온책읽기 시작 첫날 스케치

2021. 4. 27. 15:29교육현장 스케치/초등 수업 현장

온책 읽기 참 많이 들어왔던 건데... 막상 시작하려니 무슨 책으로 해야할 지부터 막막했다. 그래도 달라진건 한다는 데 있다.
어제밤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큰아들 녀석이 책을 추천해줬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글은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펼쳐내느냐에 따라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것 같다. 구절구절 감동이었던 그 책은 온책읽기로 낙점되었다.
온책 읽기 책을 선택할 때 아이들 눈 높이에 맞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쉬운 책이나 재미를 위한 책이 되면 안 될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 단계 그럼 책을 빌릴것인가? 구입할 것인가? ....
책을 다 복사해서 주는것으로 결정했다. 좀 많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글밥이 제법 많은 책이라 몇 페이지만 복사를 해보았다. 정말 반응이 안좋다면 내가 무슨 독립운동 하는것도 아니니까 다시 다른 책을 선정하면 되는 쉬운 문제다.
드디어 시작!
“얘들아, 국어공부 교과서로 하는거 재미있니? 정답은 “아니요” 이다. 그런데 “네”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곤란한데...’
그래도 다행이 몇 명 되지는 않는다.
‘다행이다.’ 재미없다고 얘기해주는 걸 기대하는 건 처음인듯 하다.
“선생님이 온책읽기로 국어공부 하려는데 책을 읽다 보면 높임말쓰기, 줄여쓰기 ... 교과서에 나온 내용들 다 익히게 되어있단다. “
(중간생략)
내 직업이 교사아니던가? 나는 설득의 여왕이다.
아이들이 점차 내 그럴듯한 주장에 설득되어 갔고 결국 강제반 자의반으로 온책읽기를 하기로 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민주적인 토의 과정은 있는것 같아 보였지만 교사가 주도하여 시작을 하기로 했다.
인쇄가 깔끔하게 같은 크기로 되어있지 않고 인쇄된 검정이 흰 종이에도 묻어나는 상황들이 있었지만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오늘 복사한 세 페이지의 글을 읽는거다.
그렇게 “읽어볼 친구? ” 라는 말과 함께 온책읽기가 진짜 시작되었다.
첫 페이지를 세 명 정도가 돌아가며 읽는데 소리내어 읽기가 순탄하지 않았다.
작게 읽는 아이, 고개를 숙이는 아이, 단어를 잘 몰라 더듬더듬 읽는 아이, ....
아이들이 ‘좀, 크게 읽어봐!’ 라는 주문을 넣는다. 이때 살짝 고민을 했다. ‘내가 읽어야 하나...’
하지만 교육은 부족한 것, 멋진것, 느린것, 서투른 것, 모두 다 있어야 진짜다.
아이들과 나, 우리 모두는 천천히 조금은 어렵게 글에 빠져들어갔다.
모르는 단어들이 많다. 루블, 코페이카, 카프탄, 품삯, 외상 등
국어사전을 찾아야 하나? 아니면 설명을 해야하나? 추측해 보는 활동들을 할까?
단계별로 좀 고민되는 상황들에 부딪혔다. 나는 국어사전을 쓰지 않고 두 가지 방법 단어유추, 설명하기로 대신했다.
온책읽기 첫날, 굉장히 만족스럽다. 아이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독후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교때 퀴즈를 맞추는 아이들 먼저 간다고 제안을 했다. 이것도 강제다. 사실은...
오늘 읽었던 책의 작가 이름은? 주인공은 어떤 가게의 주인인가요?.....
정답을 맞힌 아이들은 문을 열고 신나게 나갔지만 문 앞에서 내 퀴즈를 듣고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즐겁게 공부를 하지 않아서 힘들었던거다.

3페이지를 읽고 아코디언 책 형식으로 만들어둔 독후활동 책에 오늘 읽을 것과 관련한 내용들을 기록했다.
몇 명의 친구들 작품을 감상해보자.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 그 속에 읽은 후에 모르는 낱말이나 재미있는 상상을 써넣어서 또다른 작품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 친구는 주인공 세묜과 모르는 낱말을 표로 만들어 정리해놓았다. 참 논리적인 접근이다. 교사 보다 나을걸... >

<3페이지 속 세묜의 모습은 공통적으로 돈이 없고 심술궂은 표정이다. >

<기자가 되어 질문도 해본다. 잠시 스쳐가듯 설명했는데 놓치지 않고 이렇게 재미있게 상상하고 그럴듯한 대답을 기록하는 친구들, 너희는 천재야!>

<외상이라는 뜻을 잘 몰라서 설명을 나름대로 길게 해보았는데 이때 부정적으로 그리진 않았지만 세묜이 외상돈을 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외상이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으로 판단한것 같습니다.>